스타트업에서 일한다는 것은...

제목은 거창하게 스타트업에서 일한다는 것은.. 이라고 정했지만 지난 1년 반 동안 지금 회사에서 일한 것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이제서야 소개를 하지만 내가 일하고 있는 곳은 Kuapay Technologies, Inc이다. 요즘 한국에서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Fintech 스타트업이다. 사장은 스페인 사람으로 스페인판 페이스북이라는 Tuenti.com 공동 창업자로 있다가 회사를 매각한 후에 미국에 와서 새롭게 스타트업을 시작했다. 한 번의 성공적인 Exit이 있었지만 미국의 VC에게 투자를 받는 것은 쉽지 않았었던 것 같다.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Connection도 없었을 것이고.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아무튼 Kuapay는 대부분의 투자를 칠레에서 받았다. 총 16.7M 을 투자 받았는데, 워낙 잘 나가는 회사들이 많아서 큰 돈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성장해 나가기에는 충분한 돈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중간에 무리한 확장과 비효율적인 운영으로 가지고 있는 자금을 다 써버렸고 투자자들은 지금까지 투자한 돈을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는 한 편, 더 이상 경영진을 믿지 못하는 것 같다.


회사 발코니에서 찍은 사진이다. 사진에는 바다가 잘 안보이고 굉장히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걸어서 5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에 바다가 있다.

스타트업도 스타트업 나름이라 장단점이 다르겠지만, Kuapay에서 일하면서 느낀 장/단점은 다음과 같다.

장점
  • 좋은 곳에 위치해 있다. 예전에 에스티마님이 블로그에서 실리콘밸리의 날씨가 좋다고 얘기해 주셨는데, 우리 사장이 인터뷰할 때마다 실리콘밸리가 아닌 산타모니카를 선택한 이유가 날씨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그만큼 날씨가 좋다는 얘기다. 또한 바다도 가까이에 있고 온갖 편의 시설이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

  •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나도 의도치 않게 여러 가지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이 회사에 나의 포지션은 Android 개발자인데, 회사에 iOS 개발자가 없는 동안에는 iOS 개발도 해야 했고, 웹 개발자가 없을 때에는 웹 개발도 해야했다. 좀 더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웹 개발자가 없을 당시 회사의 프로덕트 매니저가 계약직으로 일할 사람을 구했는데, 급하게 구하다보니 자바스크립트 개발자가 필요했는데, 루비 개발자를 구했었다. 루비 개발자는 약간의 자바스크립트는 할 수 있었지만, 복잡한 일을 하기에는 실력이 충분치 않았었다. 2주 동안 일이 진행이 안되고 프러덕트 매니저가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어서 내가 해주겠다고 나섰던 것이다. Android에 웹까지 한다고 월급을 더 받는 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이렇게 적극적으로 해야 배우는 것도 많고 얻는 것도 많은 것 같다. 루비 개발자는 바로 계약 해지가 되어서 정말 미안했지만, 실제로 일을 마친 후에 프로덕트 매니저는 급여 인상을 약속했었다. 투자를 받으면이라는 조건을 붙여서..

  • 하는 만큼 보상이 따라온다. 미국의 IT 기업은 대기업이라도 성과에 대한 보상이 잘 되어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일년에 연봉이 한 자릿 수 %로 오르는 것 같다.(참고) 하지만 스타트업에서는 성과에 따라 일년에 몇 번씩 연봉이 오르기도 하고 폭도 20~30%까지 오르는 경우도 있다.

  • 높은 위치에까지 비교적 쉽게 올라갈 수 있다. 최근에 몇 회사에 인터뷰를 보러 다녔는데, 그 회사들의 부사장이 모두 한국인이었다. 스타트업에서는 포지션이 약간 높게 있는 경우가 많지만 그 중에서 한 회사는 전체 직원이 500명이나 되어서 비교적 큰 회사였다. 그런데 그 부사장들의 공통점은 처음부터 그 회사에 일했던 것이 아니라 작은 스타트업에서 일하다가 회사가 인수 되어서 부사장까지 올라간 것이었다. 물론 본인들이 열심히 했겠지만 기회가 그만큼 더 많은 것 같다. 타이틀이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만약 Kuapay가 잘 되었다면 나도 VP of Engineering은 될 수 있었을 것 같다.

  • 스탁옵션. 회사가 잘 되면 약간의 목돈을 벌 수도 있다.

단점
  • 지역 평균보다 낮은 연봉. 우리 회사가 재정적으로 넉넉한 회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단점은 재정적인 것이었다.

  • 건강 보험 플랜. 건강 보험을 가지고 있어야 해서 신청은 했지만, 별로 좋은 플랜이 아니어서 실질적으로 필요할 때는 별로 도움이 안 될 것 같다. 다행히 아프지 않아서 실제로 쓰지는 못했다.

  • 각종 복지 혜택의 부재. 우리 회사도 처음부터 혜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피트니스 센터 할인이나 일주일에 한 번 무료 점심 등의 혜택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혜택이 전부 없어졌다. 덧붙이자면 일주일 무료 점심 혜택을 나는 실리콘비치 스탠다드라고 부른다. 실리콘밸리에서는 구글 등이 무료 점심을 제공하면서 왠만큼 알려진 회사들은 대부분 무료 점심을 제공해서 실리콘밸리의 표준처럼 되었듯이, 실리콘비치에서는 대부분의 회사들이 일주일에 한 번 점심을 제공하고 있다.

  • 불투명한 정보 공유. 사장은 항상 투자자들이 직원들에게 정보를 알리지 말라고 했다고 얘기하면서 회사의 재정상태나 중요한 결정 사항들에 대해서 얘기하기를 꺼려했다.

  • 투자의 출처. 회사를 선택할 때 투자금이 어디에서 왔는지까지 확인해야 할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Kuapay에서는 중요한 이슈였다.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면 칠레가 공휴일이라서 미팅을 못한다고 하고, 투자자들이 입금을 했는데도 칠레 정부가 자금의 해외 반출을 막아서 돈을 미국으로 제 때에 가져올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