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 인디 에어

up in the air

업 인디 에어라고 하면 조지 클루니가 주연한 영화 인 디 에어 (원제: Up in the air)가 가장 먼저 생각이 난다.

해고 전문가라는 특이한 직업을 가지고 출장을 다니며 천만 마일을 모아가며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그린 영화이다. 나에게는 또 다른 의미가 있는데 이번 스타트업에서 일하면서 가장 많이 듣던 말 중에 하나이다. 이런 식이다.

지난 번 미팅 결과 어떻게 되었어요?


It's up in the air. (의역: 결정된 것이 하나도 없어)

그런데 이 번에는 내가 이 말의 주인공이 되었다. 어느날 아침 뜬금없이

오늘이 너의 마지막 날이야. 그 동안 수고했고 회사의 상황이 바뀌었어. 회사에서 준 장비 반납하고 Separation Agreement(마지막날 급여까지 다 받았고 회사에서 개발한 내용을 다른 곳에 공개하지 않는다는 내용)에 사인하면 한 달치 월급(Severance Package) 줄게. 물론 사인 안해도 되지만, 안하면 추가 월급은 못받아.

미국에 온 뒤로 자의든 타의든 거의 매년 회사를 바꿔왔는데, 이번처럼 갑작스러운 적은 처음인 것 같다. 말 그대로 나의 상황이 붕 떠버린 것이다(Up in the air).

회사의 상황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구차하게 물어보지는 않았다. 예상컨대 지금의 오피스가 계약이 만료된 후 새로운 오피스를 얻지 않고 샌 디에고에 있는 파트너 오피스로 옮기려는 것 같고, 개발자도 파트너 회사에서 100% 아웃소싱을 할 것 같다. 이 정도로 밖에 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회사라면 어차피 오래 가지 못할 회사이니까 쿨하게 사인해 주고 한달 치 추가 월급을 받아서 나왔다.

기왕 영어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 회사를 다니면 많이 쓰던 말을 몇 가지 더 정리해 본다.

can of worms

직역하면 벌레들이 담긴 깡통이라는 뜻인데, 문제가 많이 있지만 잘 봉합을 해서 보이지 않게 해 두었는데, 그것을 열면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때 쓰는 표현이다. 개발자들에게는 자주 발생하는 일 중에 하나인 것 같다. 간단한 버그 하나를 고치려고 했는데, 고치다보니 다른 버그를 발견하고 구조가 맘에 들지 않아서 구조를 변경하고 결국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일이 눈더미 처럼 불어난 경우이다.

Did you fix the bug that I reported yesterday?


That opened a can of worms.

agnostic

다음이나 네이버에서 agnostic을 검색해보면 불가지론이라는 의미가 나오는데 IT 분야에서는 이 의미로는 도저히 해석이 되지 않는다.

제일 마지막에 있는 device-agnostic에서 의미를 유추해 볼 수 있는데, 어디에서나 사용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실제 예를 들어보면 온라인 결제는 Payment Gateway를 통해서 Payment Processor와 연동되는데 그 가짓 수가 수십 개이다. 그래서 결제를 구현할 때 하나의 Payment Gateway와 Payment Processor만 지원되게 할 수도 있고 많이 사용되는 Payment Gateway와 Payment Processor를 모두 지원하게 만들 수 있는데, 후자의 경우에 agnostic이라고 할 수 있다.

Our payment solution is agnostic.

회사를 면서 나오면서 드는 짧은 생각들

  • 회사에서 제공할 수 있는 가장 큰 혜택은 좋은 동료라는 말이 있는데, 9개월 간 나홀로 개발자를 하고나니까 그 말이 어떤 뜻인지 조금 이해할 것 같다. 지난 번 회사에서는 사장부터 시작해서 모든 직원이 나에게 새 직장을 소개시켜주려고 했었는데, 이번 직장에서는 그런 도움을 받기는 어려울 것 같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경험이었고 얻은 것도 많이 있다. 리드 개발자가 되기 위해서는 조금 더 공부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단순 명확한 사실을 체험했고, 개발자 채용 광고, 코딩 챌린지 문제 출제, 면접 진행 등을 경험해 볼 수 있었다.
  • 비슷한 상황을 맞게 된다면 야후의 마리사 메이어 정도는 아니더라도 해고 될 때 최소 몇 개월의 월급 정도는 받을 수 있게 계약서에 명시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 취업 체험기를 또 다시 블로그에 공유해 볼 수 있겠구나. 매년 하는 것 같으니 시즌제라도 도입해야 하나 --;
  • 아무리 회사 상황이 바뀌었다고 해도 출산을 몇 주 앞둔 가장에게 나가라는 것은 너무하지 않니? 내 전임자에게도 똑같이 하더니, 후임자에게는 그러지 말기를...